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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직장생활

[직장일기] 귀하신 PM이 왜 누추한 곳에

by 단단_SINCE 2023 2024. 3. 11.

 

** N년전에 내가 브런치에 작성한 글임을 밝힌다

 


 

축하를 해야할지, 위로를 해야할지

 

일주일 전, 팀장이 나를 불러놓고 조심스레 운을 띄웠다. 네? 무슨 일이시죠? 순간 침을 꿀꺽. 요는 그랬다. 회사에서 프로젝트 상시체제로 업무를 전환하는데 내가 첫 PM이 되었다는 것. 네? 나는 귀를 의심했다. PM은 서비스기획자가 하는거 아닌가? 상시 프로젝트 전환? 사전에 듣지 못한 이야기였다. 오늘 처음 듣는데 갑자기 PM이라구요? 왜죠? 왜 때문이죠? 요는 그러니까, 그랬다. 사장님이 나를 콕 찍었다나 뭐라나. 나는 더욱 더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사장님이요? 이거 혹시... 무슨 몰래카메라에요? 너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되돌릴 수 없었다. 말 그대로였다.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초보 PM의 하루. 그렇게 얼레벌레. PM으로서의 첫날이 시작되었다.

 

네? 제가요?

 

 

 

PM이 뭔데? 그거 어떻게 하는건데?

 

PM 선고(?)를 받은 그날 밤. 퇴근 후 바로 노트북에 앉았다.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았다. 가만히 있으려니 좀, 암튼 좀 그랬다. 사실 PM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붙여서 그렇지, 그동안 해오던 일과 크게 다를바 없지않나? 애써 이렇게 생각했다.

 

그냥...뭐... 기획서 좀 쓰고... 타부서랑 협의해서 MVP만들고... 업무의 성격만 바뀌었을 뿐. 원래대로 하면 되는거 아니야?

 

당당한척 했지만 당연히 쉽지 않았다. 'PM'이라는 직책의 무게가 너무 버거웠다. 그거 요즘 되게 잘나가는거 아닌가... 왜 귀하신 PM이 누추한 나에게... 할 수 있는거라곤 하나밖에 없었다. 시작하는 것. 일단 생각을 정리해보자. 노트북을 키고, 그렇게 프로젝트의 개요부터 그려나갔다.

 

 

 

페인포인트 개선 + 아이디어 검증과 디벨롭

 

1차 목표를 두가지로 잡았다. 기존 서비스의 페인포인트를 개선한다. 초기 아이디어를 검증하고 디벨롭한다. 프로세스를 그려놓고 보니 대충 할일이 손에 잡혔다. 혼자 미친사람처럼 매일밤 노트북 앞에서 중얼거렸다.

 

페인포인트를 분석하려면 어떻게 해야돼? 현재 서비스와 고객을 딥다 파야겠지?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돼? 데이터 분석을 해야겠지? VOC도 참고하고.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돼? 개선점을 찾아야겠지? 그러면 끝이야? 실행가능한 액션플랜을 짜야겠지?

 

 

이런 문제점이 있네요... 아 화내시지 말구요

 

초보 PM으로서 가장 어려운 점은 타 부서와의 업무협의였다. 특히 내가 맡은 일은 기존 우리부서에서 했던 일이 아니라서 더욱 더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팀장시키지 왜 나한테 이걸 시켜서는 ㅜ.ㅜ' 기존 업무를 개선하려니 그랬다. 메스를 날카롭게 들이댈수록 더욱 더 저항은 거센 느낌이었다.

 

 

PM이 아주 방향성을 잘 잡았네

 

대표님께 1차 보고를 했다. 현황분석을 토대로 프로젝트 방향을 말씀드렸고, (엄청 조마조마했다. 대표님께 직보고하는건 처음이었다) '깔끔하게 정리를 잘 했고' '방향성을 아주 잘 잡았다' 라는 칭찬을 받았다.

 

엄마... 나 해냈어...

 

 

휴... 한 고비 잘 넘겼구나. 그 한마디에 간사하게도, '이거 좀 재밌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꼭 칭찬을 받아서는 아니지만... (사실은 칭찬을 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PM이라는걸 해낼 수 있겠구나? 함 해볼까? 하는 자신감이 솟아났기 때문이었다.

 

귀하신 PM이 왜 누추한 나에게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내가? 왜? 아무리 생각해도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은데…

 

프로젝트를 위해 풀어야 할 과제가 산더미고, 그때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화장실 변기 위에서 멍을 때린다. 내 본연의 업무도 해야하는데. 태생이 게으르고 별로 최선을 다해 살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아도 되는 것일까?

 

한 고비 넘어 작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여전히 내 마음엔 나를 향한 의심이 남는다. 제가요? 왜요? 모르겠어요, 저한테 도대체 왜 이러시는건지. 그렇잖아요. 귀하신 PM이, 왜 하필 경험도 없는 저에게…

 

별안간 퍼포먼스, 불현듯 CRM, 부지불식간에 PM까지… 자꾸 새로운걸 맡는다.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그렇지만 뭐 별 수 있나. 심드렁하게 기지개나 한번 펴본다. 해보지 뭐, 안 되면 뭐. 어쩔티비.